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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트워프 (벨기에)

듀크유 2006. 4. 22. 23:27
안트워프 (벨기에)

지금껏 접해본 여러 지명 가운데서도 늘 신기하게만 생각되는 곳중 하나가 바로 안트워프 라는 지명이다.  안트베르펜 이라고하는 것은 이곳 사람들 발음인 것 같고..
일단 아른햄에서 루젠달 까지는 네덜란드 국내선으로, 루젠달에서 안트워프까지는 국제 열차를 이용했다. 늘 그러듯이 국제 열차내부의 분위기는 그야 말로 수학 여행가는 기차 분위기 그대로 이다. 그 어떤 속박도 없어보이고, 모든게 자유스러운 것같은 분위기의 젊은 녀석들로 가득하다. 내 모습이 이곳에선 이방인 인지라 힐끔 쳐다보는 녀석도 있으나 이내 별로 관심들이 없다. 웃고 떠들고 와글와글...
벨기에로 들어온지 20여분정도 경과 할 즈음에 안트워프에 도착 했다.
날씨는, 유럽의 트레이드 마크인 구질구질한 비..

호보켄 마을
먼저,  대학생 으로 보이는녀석에게 어떻게 호보켄을 갈 수 있냐고 했더니 이친구 대뜸 한다는 소리가" 개 이야기를 찾아서 왔습니까" 이다. 나와 같은 모습으로 오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나..
지하철 인 듯한 곳에서 올라탄 것은 지하철 이라기 보다 지하에서 타는 전차 (트램) 정도 였다.
각 전철 승강장에 있는 전광 표시판엔 도착할 전차의 현재 위치 표시가 되고 있어서 전차를 기다리는 이에게 큰 도움이 될 것같았다. '플란다스의 개' 이야기의 배경이 된 호보켄에서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교회는 찾았으나 주인공들의 동상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해양 박물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범선 모형 들이었다. 그 모습 모두를 비디오에 담으려 하다 관리인을 만났는데"후레쉬를 쓰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촬영 가능하다"였다. 유럽의 어떤 박물관에서든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맞다,  문화를 남에게 널리 알리려는 뜻에서 보면 이런 정책이 도움 되는 것 아닌가?, 우리처럼 카메라를 꺼내지도 못하게 하는 것 보다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트르담 대성당
성당 정면에서 좌측은 높이가 123 m 가 된다고 하는 참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첨탑으로 유명한 성당 이나, 우측은 나즈막 한 탑 이어서 묘한 대조를 이룬다. 때마침 성당에는 많은 이들이 모여 있고 그 출입문을 통해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메이르 거리
중심가로 다시 나온 시각이 늦은 오후 무렵인데 제법 굵은 빗줄기가 쏟아 지고 있다.
또하나 신기한 것은, 이정도면 비를 피할 장소를 찾아 뛰거나 우산을 받치거나 할텐데, 적어도 우리 기준으로 보면 말이다. 그런데..이네들, 우산도 없이 그비를 주룩 주룩 맞으며 주말 저녁의 중심가를 한가로이 산책 하는 군요.또 어떤 이는, 부부 인 모양입니다, 유모차에 방울 만한 애기를 비닐로 비만 가린채 두고 그비를 맞으며 벤치에 앉아 이야기로 정다워 보인다. 허참..애기 감기들텐데..
그러면 나는, 우산? 없어.. 그냥 이네들 틈에서 이국의 비오는 저녁을 만끽 해본다.
시청사 근처에서,온통 옛 건물들 위로 내리는 비와 함께 들려오는 성당의 웅장한 종소리, 상상 되십니까 드라큐라 백작과 마주칠 것같은 그런 분위기를,, 어찌 보면 음산하기도 하더군요..
다시 안트워프 역으로 돌아와서 브뤼셀행 열차를 타고 브뤼셀로 향했다

★ 안트워프(Antwerp)
벨기에 제2의 도시이자 무역항으로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플랑드르 화파의 거장인 루벤스가 이곳을 대표한다.
교통편
브뤼셀의 중앙역에서 수시로 기차가 있다.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헨트에서는 약 50분이 소요된다. 안트워프에는 두 개의 기차역이 있는데, 베르쳄(Berchem)역은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4km 떨어져 있으며, 중앙역(Central Station)은 마르크트 광장(Grote Markt)에서 동쪽으로 약 2km 떨어져 있다.
시내이동
안트워프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트램이다. 싱글 요금이 40F. 중앙역에서 1일용 티켓(teuristenkaart)을 구입할 수 있다. 이 티켓은 1일 동안 트램과 버스를 제한없이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도보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주요 관광지들은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므로 걸어서 여행하기에 적당하다. 마르크트 광장(Grote Markt)부터 구시가(Oude Stad)를 따라 걸으면서 여행을 시작해 보자. 여행안내소는 마르크트 광장 근처(Grote Markt 15)에 있다.
관광
성모 마리아 대성당(Onze Lieve Vrouwekerk)
장대한 고딕탑이 있는 성당으로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교회다. 1352년에는 5개의 탑을 포함해 디자인되었으나 그 중 1개만이 완성되었다. 내부에는 루벤스의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Elevation of the Cross)'와 '면직(Deposition)', '거만(Assumption)' 등 3개의 걸작품이 장식되어 있고, 인상적인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에는 롬부트의 1503년작 '최후의 만찬(Last Supper)'이 그려져 있다.
루벤스 (Rubens, Peter Paul) [1577.6.28~1640.5.30]
★★ 루벤스의 집(Rubenshuis)
피터 폴 루벤스가 1610년(33세)에 자신이 집을 짓고 30여년 간 작업했던 곳이다. 당시에 그는 아주 부유해서 워퍼(Wapper; Meir 아래의 중간 지점)의 운하를 따라 그의 집과 작업실을 지었다. 동시대 화가들의 걸작품들과 47세에 그린 자신의 초상화 등이 있다. 그는 로마의 조각품들을 사랑하여 수집했는데, 그의 작품들 속에 따로 모아 놓았다.
★ 스틴 성(steen Castle)
13세기 초에 건축된 중세풍의 요새로 'Steen'으로 불리운다. 지금은 국립 해양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항구와 해안의 역사와 발달과정을 흥미로운 자료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그 중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동인도 회사의 오래된 쾌속선이다.
왕립미술관(Koninklijk Museum)
인상적인 네오 고딕 건물로 플랑드르 화파의 작품들이 수집되어 있다. 그랑 플로어에는 더욱 현대적인 작품들이 있고, 2층에 루벤스의 걸작들이 있다. 그 밖에도 장 반 아이크, 로저 반 데르 아이덴, 한스 메믈링, 브루겔 부자, 렘브란트의 작품 등 세계적인 수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이아몬드랜드(Diamondland)
안트워프는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산업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다이아몬드의 70%에 해당되는 양이 이곳에서 수출된다. 다이아몬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이아몬드랜드에 가보기 바란다. 중앙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다이아몬드 가공의 모든 과정을 알 수 있다. 다이아몬드 작업실은 가이드 투어로 진행되며, 직접 구입할 수도 있다.

또한 고딕 건축과 르네상스 미술을 자랑하는 역사적인 도시이다. 벨기에 최대의 고딕 양식의 노트르담 성당은 벨기에에서 가장 높은 123m의 첨탑을 가지고 있고, 그 성당 내부에 플라망파(派)의 거장 P.P.루벤스의 명작을 소장하고 있다. 네덜란드풍 르네상스 양식의 걸작인 시청사와 조합사무소(길드하우스), 고성(古城)이었던 스텐성 일부를 개조한 해양박물관, 16∼17세기의 플랑드르파의 명화를 간직한 미술관, 루벤스의 주택을 복원한 루벤스하우스, 아프리카 콩고산(産)의 진귀한 동물이 있는 동물원 등도 유명하다.



플란더스의 개(フランダ-スの犬, 1975)
▷ 장 르 : 드라마
▷ 분 류 : TV시리즈(1975) / 극장판(1997)
▷ 원 작 : 위다(ウィ-ダ, Oui'da)
▷ 감 독 : 쿠로다 요시오(黑田昌郞)
▷ 구 성 : 타나베 오사무(田邊修)
▷ 작 화 : 사토 요시하루(佐藤好春)
▷ 각 본 : 마루오 미호(丸尾みほ)
▷ 미 술 : 이시바시 켄이치(石橋建一)
▷ 촬 영 : 모리시타 세이이치(森下成一)
▷ 음 악 : 이와시로 타로(岩代太郞)
▷ 녹 음 : 후지노 사다요시(藤野貞義)
▷ 음 향 : 음향영상시스템(音響映像システム), 소노 테츠오(小野哲男)
▷ 효 과 : 이시다 사운드(石田サウンド), 마츠다 아키히코(松田昭彦)
▷ 편 집 : 세야마 타케시(瀨山武司), 카케스 슈이치(掛須秀一)
▷ 편 집 : 오노데라 카츠코(小野寺桂子)
▷ 기 획 : 사토 쇼오지(佐藤昭司), 혼다 요시미츠(本田慶充)
▷ 제 작 : 코하마 렌타로(小浜廉太郞), 다나카 노부아키(田中伸明)
▷ 제 작 : 일본 애니메이션(日本アニメ-ション), 후지 TV
▷ 배 급 : 쇼치쿠(松竹)
▷ 프로듀서 : 나카지마 준조(中島順三)
▷ 미술설정 : 이토 카즈에(伊藤主計)
▷ 상영일자 : (TV 시리즈) 1975년 1월 5일 ~ 12월 28일
▷ 상영일자 : (극장판) 1997년 3월 15일
▷ 제작년도 : 1975

"기억으로 남아 있는 어릴 적 감동"

19세기 벨기에 플란다스 지방. 한 수녀가 안트워프의 대성당을 찾아왔다. 대성당 중앙에 아로새겨 있는 대화가 루벤스의 작품 "성모승천"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20년전으로 기억을 되돌린다.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우유배달을 하는 할아버지를 도와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네로의 꿈은 루벤스와 같은 대화가가 되는 것이다. 매일 대성당에 가서 루벤스의 "성모승천"을 바라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지만 그의 소원은 두꺼운 커튼에 가려진 또 다른 루벤스의 그림 "그리스도의 강림"을 보는 것이다. 그걸 보기 위해서는 금화 한 닢이 필요하지만 가난한 네로에게는 그런 큰 돈이 없다.

어느 날, 네로는 길에서 심한 혹사를 당한 뒤 버려진 개를 발견한다. 네로와 할아버지의 극진한 간병으로 건강을 되찾은 개에게 네로는 파트라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네로와 파트라슈의 행복한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시간은 흘러 10살의 네로와 파트라슈는 할아버지의 우유배달을 도우면서 여자친구 아로아와 들판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뛰어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네로와 파트라슈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길에서 파트라슈의 건강한 모습을 본 전 주인은 파트라슈 네로와 할아버지로부터 뺏으려 한다. 거금을 요구한 전 주인으로에게 파트라슈를 사기위해 무리한 할아버지는 병으로 쓰러지게 된다.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를 대신해 가계를 지탱하게 된 네로에게 차례차례 불행이 다가온다. 가난한 네로와의 만남을 못 마땅해하는 코제트씨(아로아의 아버지)는 결국 네로와 아로아의 교제를 금지한다. 그리고 네로와 파트라슈, 아로아를 끔찍이 사랑하던 할아버지는 변변한 치료도 못 받은 채 네로를 홀로 두고 세상을 떠난다.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 마을에서 일어난 화재의 용의자로 네로를 지목한다.

궁지에 몰린 네로가 가진 유일한 희망은 마을에서 행해지는 그림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 우승자는 그림을 공부할 수 있는 학교에 갈 수 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날, 희망에 부풀어 발표를 보러간 네로를 기다리는 건 낙방 소식이었다. 실의에 빠진 채 집으로 돌아오던 네로는 길에서 지갑을 줍게 된다. 그 지갑이 아리아의 아버지 코제트의 전 재산이 들어있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네로는 아리아의 집에 지갑을 맡기고 눈 속으로 사라진다.

네로의 진심을 알게 된 코제트는 사방으로 네로의 행방을 찾아보지만 네로는 벌써 떠나고 없었다.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네로가 힘겨운 발걸음으로 찾아간 곳은 안트워프 대성당. 미사가 끝난 인적없는 대성당에서 죽음을 향해 치닫는 네로의 눈에 비친 것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루벤스의 그림이었다. 어느샌가 네로를 쫓아온 파트라슈를 품에 안고 네로는 달빛에 비친 루벤스의 그림을 보며 행복한 미소와 함께 하늘로 떠난다.

영국의 여류작가 위다(Ouida)가 1872 년에 펴낸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극화한 세계명작 시리즈의 대표작. 일본에서는 1975년 TV시리즈 전 52편이 개봉되어 평균 시청률 25%, 최종회 시청률 30%를 기록하였다. 특히 최종회의 방영전 네로와 파트라슈를 죽이지 말아달라는 투서가 빗발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끈 작품. 1997년 세계명작시리즈 중 최초로 극장판으로 개봉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어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으며, 이승환의 노래 "프란다스의 개"가 히트한 이유도 애니메이션 프란다스의 개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20~30대의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란 건 다 알려진 사실.

이 작품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가난한 화가 지망생인 소년 네로와 영리하고 착한 충견 파트라슈의 깊은 우정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와 살게 되는 네로는 가난 때문에 온갖 시련을 당하지만 루벤스와 같은 대화가가 되려는 자신만의 꿈을 키우며 그나마 행복에 잠긴다. 그러나 가난은 끝내 소년의 재능을 마비시키고, 급기야는 죽음으로 몰아간다. 대부분의 명작동화가 갖는 뻔한 비극적 결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건 네로라는 소년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과 더불어 성당의 달빛과 루벤스의 그림이 절묘하게 조화된 마지막 장면 때문이다.

극장판의 제작자들도 이 마지막 장면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듯하다. 극장판 "프란다스의 개"는 아로아가 수녀가 되어 돌아오는 모습을 첫 장면에 삽입함으로써 TV시리즈의 감동을 지니고 있는 세대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작품역시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지만 극장판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마지막 장면이다. 벨기에 대사관의 협찬를 얻어 실제의 안트워프의 대성당을 정밀하게 재현하였으며, 컴퓨터 그래픽을 구사한 환상적이고 웅장한 장면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이 마지막 장편 외에는 극장판이 TV시리즈에 비해 두드러지는 것이 보이질 않는다. 역시 어릴 적 감동은 기억으로 남기는 것이 더 아름다운 모양이다.


플랑드르의 대화가로서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화가. 1577년
베스트팔렌의 지겐에서 출생.
부친은 약제사이며 학자였는데,
칼빈교도로서 추방되기까지는
고향 안트워프의 참사회원이었다.
10세 때인 1587년 부친이 사망하자
가족들과 함께 안트워프로 돌아 왔다.
어렸을때 아담 반 노르트 및 오토
베니우스의 문하에 들어가 그림 기법
외에 고전 문학 및 이탈리아어 등
폭넓은 교양을 터득하였다.
1598년에는 안트워프의 화가 조합에
가입하였다. 1600년 이탈리아로가
그로부터 8년 동안 만토바의 곤차가공의
궁정에 외교관으로서 종사하였다.
이탈리아 체재 중에는 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여 연구하였다.
또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르네제 등의 베네치아파 및 카라바지오의
작품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시의 작품에는 '만취한 헤라클레스',
'로물루스와 레무스' 등이 있다.

1608년 모친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브뤼셀에서
총독의 궁정 화가로서 그의 창작력을 가장 잘 발휘하였다. 이는 플랑드르파
최대의 화가로 도약하는 루벤스 자신의 양식 발전의 제 1 기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이듬해인 1609년 에는 이사벨라 브란트와 결혼한 뒤 안트워프에서
웅장한 저택과 화실을 마련하고 다수의 제자를 지도하였으며 1610년부터
1612년 사이에 안트워프 대성당을 위해 제작한 유명한 '십자가 건립', '십자가
강하'등을 비롯하여 1615년부터 1620년 사이에 걸쳐 제작한 현재 뮌헨의
아르테피나코테크에 있는 '최후의 심판'등 수많은 대규모의 작품들을 전혀
독창적인 양식으로 제작하였다.

한편 뛰어난 두뇌, 훌륭한 용모, 원만한 성격을 인정받아 1623년 경부터는
외교관으로서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프랑스 각국을 방문하였다. 그 기간
동안에는 단지 정치상의 외교 활동뿐만 아니라 각지의 궁정에서 회화 제작에도
관계하였다. 1630년 그의 53세 때 비단 장수의 딸인 16세의 미녀 엘레느 푸르망과
재혼하였다. 이 두 번째 결혼을 경계로 하여 그의 양식 발전의 제 2기에 접어
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화풍은 표현이 감각적이고 세속적이며 밝고
화려한 색조와 함께 빠른 터치에 의한 독특한 힘 및 인체의 모든 동작을 철저하게
표현하려는 조소적인 명확성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1640년 5월 30일 영예와
행복에 넘친 왕자와 같은 생애를 마쳤다.

그는 신화, 종교, 역사, 우화 외에 풍속화, 초상화, 동물화, 풍경화 등 다방면에
걸쳐서 활동하여 2000점 이상에 달하는 정력적인 업적을 남겨 놓았다. 작품의
어느 것이나 힘찬 선, 풍려한 색채, 터져나올 듯한 생기, 다이나믹한 동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바로크 회화를 대표하는 참된 관록을 보여 주는 것들이다.
그 중에는 루벤스가 그린 밑그림에 제자들이 착색하고 그 마지막 마무리를
루벤스 자신이 행한 작품도 많다. 반 다이크와 같은 일류 화가도 그의 제자로서
또한 조수 였었다. 특히 유명한 작품으로서, 종교화로는 몇 점의 '피에타',
'삼왕 예배', '성모승천', '성 이그나티우스의 기적', '성 리비누스의 순교' 등이
있고 신회화로는 '아마존의 싸움', '레우키포스의 처녀 약탈' 등이 있다. 또 즐겨
반복된 소재로서 '안드로메다', '파리스의 심판', '우미한 3 여신' 등이 있으며
특히 마리 드 메디치의 주문으로 뤽상부르궁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역사화 및
우화풍의 연작 21도는 그의 명성을 절정에 올려 놓은 작품으로, 그 규모와 호화
현란함 때문에 매우 유명하다. 그 밖에 그의 두 아내와 사랑하는 아이들의 초상
및 자화상 등의 걸작이 많이 있다.

(텍스트 자료 출처 : 미술 인명 용어 사전-미술도서편찬연구회/신도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