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일정 : 호텔 - 교토이동 - 청수사 - 점심 - 평안신궁 - 금각사 -나라이동 - 동대사 - 오사카이동 - 신사이바시 - 오사카남항 - 명문훼리
패키지여행은 배낭여행과 달리 가이드의 일정에 충실해야 한다. 단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줘야 계획된 일정을 원만하게 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전날 가이드는 하루일정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아침 8시에는 교토를 향해 출발해야 함을 서너 차례나 강조했다. 일행은 40명이다. 대부분 가족단위로 모인 것 같다. 우린 7시 20분에 아침식사를 호텔식 뷔페로 하고 예정된 시각인 8시에 교토로 출발했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일본의 역사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장시간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약 2시간가량 소요되는 거리인데도 그리 지루하지 않게 어느덧 교토 청수사에 도착했다.
일본은 지방이 현과 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사카부와 교토부만 부라고 칭하고 나머지는 모두 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도와 광역시급의 명칭이란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면서 2차 세계대전의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되고 이후 7년간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게 되는데 1950년 발발한 한국전 때 미군이 자군의 군수물자 조달을 위하여 군수산업단지를 일본에 조성하면서 일본을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에 굴하지 않던 일본에 미국은 2차 원폭 투하지역으로 규슈지방의 모지라는 곳을 선택하고 폭격기가 출격을 했는데 모지지방 위에 깔린 낮은 구름으로 식별이 용이하지 않자 제3차 원폭대상지인 나가사키로 작전을 변경한 것이란다. 모지지방은 천운으로 원폭의 피해를 피한 반면 나가사키는 억수로 운이 없었던 것이란다. 일본은 2곳의 원폭에 의해 약 30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잘 나가던 일본의 경제는 1985년 미국의 엔화 절상정책으로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했고 이후 침체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정치경제구조는 미국의 정치경제적 입김에 밀접한 영향을 받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아직도 강력한 미국의 영향 하에 있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비굴할 정도로 부시에게 아부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을 법도 하다. 실제로 현재 일본 근로자의 임금은 잘 나가던 90년대에 비해서도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경지침체를 잘 나타내는 현상중 하나가 지나가는 택시의 광고 문구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주로 대도시로 갈수록 심하다고 한다. 즉 일본의 대도시 택시 광고판에는 5천엔 이상은 50%할인이라는 광고판을 부착하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가장 민첩하게 반응하는 침체경기의 흐름을 택시 광고판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사람들 사는 삶의 질은 20-30년 전의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면 되는데 이를 좋게 말하면 국민들의 근검한 삶이 일본의 경제력을 뒷받침하고 있는 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인구는 1억 2천 7백만명 정도인데 최근 들어서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남자의 평균수령이 82세로 세계에서 제일 길기도 하고 60세 이상의 장년인구가 20%를 넘고 있고 현재 인구가 감소중인 국가는 헝가리와 일본 두 나라라고 한다.
교토인구는 140만 정도라고 한다. 가이드는 지나가는 택시를 가리키며 MK택시의 유래를 들려준다. MK택시는 오사카지역의 한국 사람인 유기붕 형제의 회사로 이들 두형제가 미나미와 카트라는 두 회사를 인수하면서 만든 회사란다. 주유소와 택시를 운영하는 회사인데 일본에서도 질 좋은 서비스로 유명하단다. 일본 속에서 한국인의 긍지를 나타내는 모범사례라고 한다. 일본의 차량에는 주황색 번호판이 있는데 7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발부되는 번호판이란다. 노랑색은 600CC이하의 경차에 부착하는 번호판이고 자가용에는 흰색번호판이, 영업용에는 녹색번호판이 붙여진다.
10시경 기요미즈데라(청수사) 도착 했다. 청수사는 맑은 물의 뜻, 우리나라 여느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청수사 입구에는 일본 전통 토산품 판매점과 전통 먹거리 상점들이 많이 있었다. 처음 나들이라 그런지 가이드가 대열에 이탈하는 이가 있는지 꼼꼼히 살피는 눈치다. 청수사 입구에는 새로 지은 듯이 보이는 높다란 건물이 있는데 아마도 대문 역할을 하는 건물인가 보다. 그 앞에서 약간의 청수사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는 청수사에 대한 관광시간을 1시간 반 가량 준다는 가이드의 안내가 있었다.
현지에서는 몰랐는데 청수사는 경사가 급한 계곡에 삼나무로 기둥을 엮어서 넓은 절터를 만들고 그 위에 본당을 지었다고 한다. 입구에 절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스님의 철제 지팡이와 철제신발이 놓여져 있는데 그 스님의 힘이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다. 본당에서는 교토시내의 정취가 한눈에 들어온다. 본당을 돌아 청수사의 명소인 세 갈래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시는 곳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고 물 받는 이들은 제각각 재밌는 표정으로 물을 받아먹는다. 떨어지는 물줄기의 힘이 꾀나 세다.
모두들 11시30까지 차로 집합을 했다. 점심식사는 시내의 식당으로 이동해서 일본 정통음식인 벤또 도시락으로 했다. 점심을 먹고는 잠시의 여유도 없이 다음 관광지인 헤이안신궁으로 향했다. 헤이안신궁(평안신궁)은 교토에 있는 많은 신사, 신궁중 가장 유명한 건물이란다. 현재의 건물은 헤이안시대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하고 있으며 794년에 지었던 헤이안시대의 왕궁을 2/3크기로 축소하여 1894년에 헤이안 천도 1,100년을 기념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다지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었다. 우린 1시간도 못돼서 금각사로 향했다.
킨가구찌(금각사)는 1397년 건립한 선종사원이란다. 원래이름은 녹원사인데 교코지(경호지)위에 금박으로 빛나는 2층의 누각이 유명해 지면서 금각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경내에 있는 교코지는 금각사를 주변으로 물의 흐름을 따라 가꾸어진 일본식 정원이다. 교종은 경전을 위주로 계율을 중시하는 불교의 종파인데 반해 선종은 마음을 중시하고 깨달음을 얻는 데에 목적이 있는 종파로서 1400년 전에 달마대사가 만들었다는 종파다.
금각사 경내를 관광하는 중에는 비가 계속 왔다. 청수사와 평안신궁을 관광하는 중에는 그래도 비는 오질 않아서 다행이었는데……. 빗줄기도 제법 굵다. 우산 쓰고 사진 찍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주어진 시간에 버스로 돌아와야 했기에 주욱 지나치듯 구경하다보니 금박을 입혔다는 금각사 말고는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나라이동
버스는 또 약 1시간 반 가량을 달려 나라의 도다이지(동대사)로 향했다. 동대사는 세계최대의 목조건물로서 건축시 한국인 행기스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전해지며 건축당시 고구려, 백제의 장인들 솜씨에 의해 건축되어 졌다고 한다. 현재의 동대사 건물은 1,790년 2/3크기로 재현된 것이란다. 본당에는 무게 452톤의 청동 대불상이 건물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데 정말 우리나라에서 보는 불상의 얼굴을 하고 있다. 본당을 떠받치고 있는 여러 개의 기둥 중에 기둥 밑에 구멍이 난 기둥이 있는데 구멍을 통과하면 건강하고 용감하게 자란다고 하여 유치원생들이 길게 줄을 서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재밌다.
동대사는 사슴공원으로도 유명하다, 동대사에 거의 다다르면 공원주변에 한두 마리의 사슴들 모습들이 눈에 띠기 시작한다. 동대사 입구에는 150엔짜리 사슴먹이인 쎈베이를 살 수 있는데 쎈베이를 손에 건네 들자마자 주변의 사슴들이 거의 낚아채듯이 달려든다. 그래서 우린 쎈베이 살 엄두도 못 내고 말았다. 동대사는 정원의 모습도 일본식이라기보다는 한국식으로 넓게 조성되어 있었다.
오사카 이동
오사카 시내 고속도로상 오른쪽으로 오사카성이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400년 전 건립했다는 성이다. 현재의 성은 1931년에 재건한 것이란다. 마시카가 가문이 가마무라 막부를 이기고 무로마찌 시대를 여는데 이후 100년간 부모자식도 없는 무사들의 전쟁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 시기인 1500년대 중반 포루투칼 상인이 표류중 일본에 억류되었었는데 일본인들은 이들을 극진히 대접했다고 한다. 극진한 대접을 받은 이들이 귀국 이후 서양에 일본의 이미지 좋게 전달했고 이후 일본에 카톨릭과 신무기 조총이 들여오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일찍이 서양과의 교류에 눈을 뜬 오다노무라가는 재력을 이용 서양식 신무기인 조총을 수입하여 막강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일본을 통일 하지만 오다노무라가는 부하 아케츠미케하데의 배반으로 자결하고 만다. 오다노무라가의 또 다른 부하인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은 농부의 아들로서 출세영웅으로 통한다. 그는 키 150cm에 원숭이를 닮은 못생긴 얼굴을 가졌지만 오다노무라가의 몸종으로 그의 신뢰 하에 성장했다고 한다. 그는 무사집안이 아니라 장군 반열에는 들지 못했다고 한다.
아케츠미케하데가 오다노무라가를 배신하자 그의 충신인 도요토미히데요시가 반대세력을 결집하여 아케츠미케하데를 물리침으로서 아케츠미케하데는 13일 만에 최고의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고 풍신수길이 권좌를 차지하게 된다. 통일된 일본과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풍신수길은 명나라를 침공하기 위해 조선에 길을 내어 줄 것을 요구하는데 이를 정명가도라 한다. 하지만 조선이 이를 허락지 않자 1592년 조선과의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전쟁이 임진왜란이다. 이후 일본 열도는 정유재란까지 7년간 조선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조선과의 전쟁에서 소득을 보지 못한 채 패한 풍신수길은 늦게 아들을 갖게 된다. 가신 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아들의 안위를 부탁하며 숨을 거두지만 덕천가강은 어린 풍신수길의 아들(도요토미 히데요리)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한다. 덕천가강은 히데요리가 장성하면서 히데요리를 제거하는 음모를 은밀히 꾸미게 되고 오사카 성을 침탈하게 된다. 덕천가강의 꼬임에 걸려든 약관 20세의 히데요리는 결국 자결을 하고 만다.
길이 막힌다. 5시40분경 신사이바시와 도돔보리에 도착했다 빗줄기는 밖을 걸어 다니지 못할 정도로 아주 거세다. 하지만 기왕 온 김에 약 30분간의 자유시간이 허락되었다. 신사이바시의 바시는 다리라는 뜻으로 신사이다리가 있던 곳을 가리킨다고 한다. 도돔보리(운하) 보리는 호리라는 명칭으로도 쓰이는데 파다라는 뜻이고 도돔이라는 사람이 운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장대비를 맞으며 이렇게 30여분 신사이 바시를 걷는 것으로 오사카 관광을 마쳐야 했다. 6시 20분에 다시 버스에 탑승했다. 7시까지는 오사카 남항에 도착해야 8시 출발하는 배를 탈 수 있다고 한다. 비교적 여유 있게 오사카 남항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배에 올라탔다. 방배정 후 선내에서 제공하는 벤또형 식사로 저녁을 했다.
배는 혼슈와 시코쿠섬 사이의 일본 내해를 지나게 되는데 혼슈섬과 시코쿠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3개 있는데 그중 하나인 아카시오코시 대교를 9시경에 지나간다기에 갑판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결국 보지 못하고 2층에 있다는 대욕장을 기원이와 함께 가 보았다. 목욕탕에는 일본 유도부 고등학생들로 한 가득하다. 큐슈지방으로 전지훈련 가는 중인 듯 했다. 일본도 방학시즌 시작이라 그런가 보다. 이 배의 손님은 일본학생들을 제외하고는 한국 사람들이 전반이상을 차지하는 듯하다. 여기저기 한국말 하는 이들이 많다.
배는 정확히 12시간을 운항한다고 한다. 내일 8시 하선이라 6시에는 일어나야 하고 늦어도 7시30분까지는 아침밥을 먹고 하선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스에 갔을 때 아테네에서 크레타 갈 때 탔던 야간훼리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지금시각이 11시11분이다.
오늘 지출경비(엔)
커피 자판기 2개 160엔
음료 자판기 3개 300엔
맥도널드 감자칩스 3개 821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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