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이 발굴한 온천 휴양도시이자 계몽시대의 문화중심지이다. 19세기 이후 도시가 점차 쇠퇴하였고 1978년 온천도 말랐으나, 시가지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기념물 약 4,000개가 잘 보전되어 우아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거리 북서쪽에는 1729∼1736년 건설한 사각형의 광장인 퀸스퀘어가 있다. 광장에 면해 있는 3층 건물들에는 높은 창이 달려 있고, 원기둥과 프리즈(띠모양의 장식)로 각각의 집을 구분해 놓았다. 둥근 서커스 광장은 1754∼1774년 작품으로서 조지왕조양식으로 지었다. 광장의 건물들은 석회암으로 되어 있으며 중앙광장에서 방사상으로 낸 3갈래의 길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다.
1775년 비탈길에 지은 로열 크레슨트는 집 30채를 180m에 걸쳐 반달 모양으로 연결해 놓은 팔라디오양식의 연립주택이다. 시가지 끝쪽 에이번강에는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를 본떠 커다란 아치를 배치한 펄트니 다리가 놓여 있다. 강 근처의 하안단구에는 로마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로만배스박물관이 있고 그 옆에는 튜더왕가식으로 지은 배스수도원 성당이 있다. 1987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요즘처럼 웰빙이 화두가 되어 `건강'을 중심으로 한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된 적이 없다. 특히 물을 이용한 스파문화는 좁게는 최고급 살롱스파에서 넓게는 온 가족이 참여하는 찜질방까지 형태조차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서양에선 중세 시대에 물(holy water)을 신이 내린 은총의 매개체로 신성에 의한 치유력이 있다고 믿었다. 거기에 이윤추구를 정당화하는 세속화의 물결이 온천장 비즈니스를 부상시켰는데 그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영국의 배스(Bath)이다.
목욕과 관련된 모든 명칭에 달라붙는 `배스'란 단어도 이 도시에서 출발했다. 놀라운 치유력이 있던 온천장런던에서 기차로 1시간 반. 로마시대 이래로 스파의 중심이 되어온 도시, 배스는 그 기원이 에이번 강 계곡에 자리잡은 원형극장에서 시작된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리어 왕의 아버지인 켈트족의 왕자, 블래더드가 세웠다고 한다. 그는 진정한 왕위 계승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병환자란 이유에서 돼지몰이꾼으로 품을 팔아야 했다. 우연히 그가 몰던 돼지가 수증기가 덮인 연못에 빠졌는데 어렵게 끌어올려 보니 원래 앓고 있던 피부병이 다 나아 있었다. 그는 온천수의 치유력을 자기 몸으로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곧장 따뜻한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나병을 완치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왕좌를 차지한 그는 못에 온천을 짓고 자기의 이름을 붙이도록 했다.
블래더드란 발음이 오늘날의 배스가 된 사연이고 목욕이란 뜻의 영어 단어 배스(bath)의 어원이 여기서 비롯된 셈이다. 돼지가 연못에 빠진 날이 바로 왕자에겐 운명의 날이 된 셈이었다. 하지만 실제 배스의 역사는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가 브리튼섬을 정복한지 얼마 안 된 1세기 초반에 새로운 지배자들이 이 지역(당시 지명은 아쿠아에 술리스)으로 몰려들었다. 그 후 이곳엔 욕탕들이 들어섰고 서유럽에서 가장 인상적인 로마 건축물로 꼽히는 원주 기둥으로 둘러싸인 로마 욕탕도 이때 생겼다. 로마인들이 배스를 영국 최초의 온천지로 만든 셈이다. 로마인들이 물러난 뒤 배스는 수도원 성당을 중심으로 종교의 본산이 되기도 했다.
그 후 오랫동안 세인들의 관심에서 잊혀진 이 도시가 18세기에 다시 기억 속에 되살아나 영국의 대표적인 온천도시가 된 것은 독특한 내력을 지닌 세 사람 때문이다. 도시 개축안을 내놓은 존 우드 1세와 자신의 채석장에 있던 돌더미를 건축재로 내놓은 랠프 앨런, 그리고 무관의 배스 왕이라 불려졌던 리처드 보우 내쉬(1674-1762)이다. 특히 내쉬는 이 온천 휴양지의 사교계를 조직, 배스를 관광명소로 만든 사람이다.
풍부한 문화유산과 문학적 배경, 로마인들이 이곳 수질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아채고 커다란 공중 목욕탕과 미네르바 여신을 위한 신전, 그리고 대도시를 건설했지만 그들이 떠나고 무려 1천 50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사람들은 이런 시설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로만 바쓰는 지면에서 약 500m나 밑에 건설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견된 때가 1880년이다. 로만 바쓰의 시스템은 현대인의 시각에서 바라봐도 놀라울 정도로 과학적이다. 뜨거운 욕탕과 찬 욕탕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고 운동까지 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온수 수영장인 대 욕장(Great Bath)이다.
발견 후 바쓰는 금새 귀족과 부유한 상인들의 표적이 되었고, `목욕'을 가장한 사교를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도시 전체에서 그런 흔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인 로열 크레슨트(Royal Crescent)와 1세기에 지어진 로만 바쓰 박물관(Roman Bath Museum)이 가볼만한 명소이다. 특히 박물관은 로마 시대에 남녀 혼탕의 목욕탕이자 사우나장, 헬스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2천년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바쓰엔 남다른 문학적 배경도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오만과 편견(1813)'이란 소설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여류작가 제인 오스틴(Austen, Jane 1775-1817)이 5년후 발표한 또 다른 소설, `설득 Persuasion(1818)'에서 바쓰를 작품무대로 등장시켜 유명해진 것이다. 사실 오스틴은 젊은 시절 여러번 바쓰를 방문해서 퀸즈 스퀘어 거리(13번지)에 묵은 적도 있고 그녀의 부모들 역시 이곳 월코트 교회(Walcot church)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의 아버지가 묻힌 곳도 여기이다. 그래서 바쓰엔 제인 오스틴 코스가 또 다른 관광상품이 되어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 로만바쓰 관광 포인트 : 로만바쓰박물관을 찾아가면 바로 앞에 바쓰사원Abbey이 있다. 바쓰사원은 입장료가 있는데 별로 볼만하지는 않은 것 같다. 로만바쓰입구는 우리나라 여느 목욕탕의 입구와 별반 다를게 없다. 건물에 덩그러니 로만바쓰 간판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로만바쓰를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짧은 시간에 바스시내 전체를 두루 보기에는 시간이 없다. 따라서 바로 옆에 있는 레스토랑 또는 그 입구에 가면 바로 발 아래로 로만바쓰의 모습이 보인다. 굳이 입장한다면 박물관 입장과 병행하게 되는데 족히 두어 시간의 볼꺼리가 있다. 로마시대 지어진 욕장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리고 아직도 따뜻한 물을 살짝 만저 보는 재미도 있고...
☞ 기타 바쓰 관광 포인트 : 바쓰 시내는 대부분의 볼거리를 위하여 관광 안내표지판으로 잘 안내되어 있다. 로만바쓰에서 멀지 않은 곳(걸어서 1-2분)에 있는 펄트니 다리를 찾아 보자. 흐르는 냇물과 다리위에 지어진 상가의 모습이 특이하면서도 이쁜 모습이다. 다음은 로얄 크레슨트로 이동하여 넓은 정원에서 반원형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아 본다. 로얄 크레산트 앞에 있는 제인 오스틴 센타도 찾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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